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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수사학카테고리 없음 2022. 6. 3. 23:30
철학과 수사학 수사학은 하나의 무기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수사학의 지위, 우리 문화 속에서 수사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그 도덕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답하기에 앞서 수사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용한 것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 무용한 것인지를 따져보는 일이 합당할 것 같다. 1. 수사학의 영속성 : 광고 우리는 앞에서 고전 수사학은 항상 통용되고 있고, 이를 다른 명칭으로 부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늘 수사법을 응용하고 있으며, 고대에 정착된 수사학의 커다란 체계는 풍요해지고 보다 융통성이 있으며 문명의 변화에 적응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존속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런 이유만으로 수사학이 영속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광고를 예로 들어 대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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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문채 와 수사학카테고리 없음 2022. 6. 2. 15:33
단어의 문채 우선 번역은 반역이다 (Traduttore, traditore)라는 이탈리아 격언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이 격언은 엄밀히 말해서 번역이 불가능한 표현이다. 만일 내가 이것을 traducteur, traître(번역자는 반역자라고 옮긴다면 이 격언에 힘을 불어넣는 유음 중첩(類疊, paronomase)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단어의 문채의 첫번째 특징은 요행히 다른 언어에서 그와 등가의 음을 발견할 경우 말고는 번역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스토아 학파의 anékbou kai apékbou(참고 금욕하여라)라는 격언은 sustine et abstine라는 라틴어로 옮겨도 훌륭하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옮길 경우 문채는 사라진다. supporte et abstienstoi라는 요컨대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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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의 쇠퇴와 부활카테고리 없음 2022. 6. 1. 10:16
수사학의 쇠퇴와 부활 이 짤막한 개관은 고대 수사학의 체계가 그 효용성, 아니 그 필연성을 조금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유럽 문화에서 이 체계가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영속했는지를 살펴보자. 이를 위해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역사적인 고찰에 만족하기로 한다. 우선 수사학의 공리적인 기능이 다소 약해지고 미적인 기능이 우세하게 된다. 즉 설득의 화술이 미려한 말의 기술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 용어의 좋은 의미에서 '일반 공론' 두 가지를 비판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 공론은 타키투스로부터 비롯하는데, 이 공론에 따르면 변론술은 공화국의 자유와 더불어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사실 재판적 담화는 변함없이 존재했다. 과시적 담화는 기독교의 전도와 더불어 새로운 비약을 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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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 수사학카테고리 없음 2022. 5. 31. 12:10
체계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사학은 정착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수사학자들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키케로(기원전 106~43)와 퀸틸리아누스였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체계를 수정하지 않고 더욱 풍부하게 했다. 그리고 이 체계는 고대에서 19세기까지 존속했다. 그 큰 줄기를 요약해 보았다. 담화의 세 장르 수사학의 영역은 다음 세 장르로 구분된다. 첫째, 재판적 장르(genre judiciaire)는 법정에서 상대방을 고발하거나 자신을 변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장르의 기준은 정당함이고, 지배적인 논증법은 생략 삼단논법(enthymème)이다. 둘째, 정치적 장르(genre délibératif)는 정치적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충고를 주는 데 목적이 있으며, 도시국가에 유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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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의 역사 그리고 체계카테고리 없음 2022. 5. 30. 23:48
수사학의 역사 그리고 체계 1. 세가지 원천 롤랑 바르트는 수사학이 "소유권 소송으로부터 태어났다"고 말한다. 한편 수사학은 자유로부터 태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수사학의기원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시칠리아에서 시작한다. 당시 시칠리아에서는 참주들의 몰락에 이어, 참주들의 시대에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과 추방당한 사람들이 몰수된 자기 땅을 되찾기 위한 소송과 그에 대한 재판이 줄을 이었다. 이러한 민중재판에서 사람들을 설복시키기 위해서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했다. 이때 코락스와 그의 제자 티시아스가 나타나 말을 통해 사람을 설득시키는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코락스는 이를 위해 기원전 460년경 『변론술(Technèrbétorike)이란 교과서를 썼다. 이 첫번째 기술서'에 이어 많은 기술서들이 나왔지..